[‘창의는 어떻게 혁신이 되는가] (드레북스 刊) 저자는 소외되고 버려진 것에 새롭게 가치를 부여하고 창조하는 능력, 거기에 인공지능(AI) 등 기술을 덧대면 ‘혁신’이 된다고 강조한다. 당연한 것을 의심하고 통념을 뒤집는 ‘창의가’ 혁신을 만든다는 것이다. 기계와 로봇이 늘면서 제조공장과 물류창고에서 사람이 사라지고, 전산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사무실에서도 사람이 사라졌으며, AI 등장으로 고소득 전문직조차 자리를 내주고 있다. 저자는 이제 ‘그럭저럭 살던 시대는 끝났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이 ‘창의’와 ‘혁신’이라고 진단한다. 기계와 AI가 학습할 수 없는 데이터에서 창의를 찾고, AI가 추론으로는 얻을 수 없는 혁신을 만들어 실행하는 것. 책에는 그 방법이 담겨있다.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됐다. 1장 나를 위한 경쟁력, 2장 새로움으로 통하게 하라, 3장 모두를 위한 시작이다. 저자는 철학자 질 들뢰즈의 리좀 모델을 인용해 줄기가 땅속으로 들어가 사방팔방 뻗어가는 뿌리처럼 장애물을 만나면 뚫거나 우회하고 결합해 성장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또 재료의 개성을 지키면서도 하나로 똘똘 뭉치는 비빔밥을 예로 들어 좋은 인재들을 융복합해 시너지를 내는 인간 촉매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책은 각 장마다 구체적인 사례와 실행 방안을 제시해 실용성을 높였다. 이석채 전 정보통신부 장관은 추천사에서 “창의와 혁신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며 “이 책이 일상에서 단서를 찾아 상상 그 이상의 가치를 만든다”고 평했다. 문규학 소프트뱅크 비전펀드 아시아·유럽 총괄은 “역사와 기술, 철학을 넘나들며 날카롭고 재기 넘치는 통찰을 풀어낸다”고 말했다. 또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는 “인공지능 시대에 생존하려면 창의와 혁신이 일상이 되고 습관이 돼야 한다”며 “이 책은 불리한 상황과 조건을 버리지 않고 자신에게 유리한 강점으로 바꿔 혁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양명학의 전개와 특수성을 사상사적 시각으로 조명한 학술교양서 ‘양명학’이 출간됐다. 이 책은 한국 사상가의 궤적과 철학적 개념을 탐구해 인간 안에 잠재한 사유와 문화의 근원을 이해하기 위해 기획한 ‘사유의 한국사’ 교양총서 여섯 번째 책이다. [양명학┃한정길 지음. 한국학중앙연구원 펴냄. 600쪽. 3만5천원] 15~16세기에 형성된 양명학은 동아시아인들의 의식과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철학이다. 한국, 중국, 일본 삼국에서 양명학은 각국의 정치 문화와 학술 상황의 특수성으로 인해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인다. 중국에서는 명대 사상의 주류로, 일본에서는 국민도덕학으로 기능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주자학자들의 비판 속에서 수용되고 특화된 경향을 보인다. 이는 한국 양명학의 특수성을 규명하기 위해 비교 연구가 필요하며 동아시아 내에서 한국 양명학 의의를 탐구해야 하는 이유다. 책은 총 11장으로 구성됐다. 한국 양명학 연구의 기존 철학사적 관점과 윤남한(1922~1979, 역사학자)이 제시한 사상사적 관점을 비교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나아가 양명학의 본질적 특성을 규명하고 범위를 확장하는 동시에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사상사적 관점의 연구 비중을 높여 한국 양명학의 전개 과정을 폭넓게 살펴본다. 저자인 한정길은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양명학 연구자다. 조선시대 경학과 동아시아 양명학을 중심으로 사상사의 흐름을 연구한 그는 조선 지식인들이 양명학을 수용하고 변용해나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조명해왔다. 발간까지 약 4년이 걸린 이 책은 단편적인 연구가 아닌 깊이 있는 통찰을 얻기 위해 한 명의 연구자가 일관되고 균형잡힌 시간으로 오래도록 탐구하고 쓴 책이다
[실학박물관이 출간한 ‘실학, 고전으로 만나다’ 시리즈 제1집 ‘열하일기(熱河日記)’. ]경기문화재단 제공 ‘열하일기’는 18세기를 대표하는 북학파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이 1780년(정조 4) 건륭제의 7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사절로 청나라에 다녀오며 지은 책이다. 특히 박지원의 실학사상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으로, 청나라의 발전된 모습을 조선의 모습과 비교하고 조선 사대부를 비판하는 등 박지원의 사상과 당시 사회상을 알아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실학박물관이 출간한 ‘열하일기’의 평역·출간 작업엔 이승수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함께해 의미를 더했다. 이 교수는 전체 열하일기 이야기 중 재미있고 박지원의 사상이 잘 드러난 편을 뽑아 쉽고 재미있는 문체로 재해석해 번역했다. 번역문, 원문과 함께 이 교수의 상상력과 문학적 지식을 녹여낸 ‘평어’의 순서로 구성해 읽는 재미를 더했다. 앞서 실학박물관은 지난 2009년 개관 이후 15년간 실학인물총서, 실학교양총서, 실학연구총서 등 실학을 알리기 위해 여러 기획도서 시리즈를 발간해왔다. 이번 실학고전총서 시리즈 ‘실학, 고전으로 만나다’는 실학 고전에 수록된 재미있는 글들을 엄선해 현대어로 번역한 시리즈로, 실학 스토리텔링을 위한 원천자료를 확보하고 ‘실학 고전’을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획됐다. 실학박물관은 ‘열하일기’를 도서관과 실학 유관기관에 배포하고, 실학박물관 뮤지엄숍에서 한정 판매한다.
by 수원본부장 손옥자[■ 춤추고 싶은데 집이 너무 좁아서]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지역에는 100만명 가량의 로힝야 난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로힝야 난민들은 미얀마의 소수민족 중 하나. 버마족이 정치와 군사 등 주류를 장악한 가운데 로힝야족은 1982년 시민권이 박탈되고 사회 안에서 행사할 수 있는 모든 권리를 잃어버렸다. 급기야 2017년 8월에는 1만명 이상의 로힝야인들이 학살 당한 끔찍한 일이 발생한다. 살아남은 이들이 국경을 넘어 이동한 곳이 이곳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 캠프다. 캠프 안의 임시 거주지인 셸터는 가족이 몸을 눕히고 하루하루 살아가기에도 좁고 어둡다. 이 곳에서 52%가량을 차지하는 여성들은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로힝야의 규율 탓에 더욱 고립되고 억눌린 삶을 산다. ‘춤추고 싶은데 집이 너무 좁아서’(파시클 刊)는 이 난민 캠프의 여성들을 위한 마련된 작은 공동체 ‘샨티카나’를 구성하는 여성들과 활동가, 연대하는 창작가의 이야기다. 한국의 인도적지원활동가, 다원예술창작자, 국제분쟁전문기자, 독립연구자 등이 ‘산티카나’에서 생존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샨티카나’는 억눌린 삶을 사는 난민 여성들에게 울타리 역할이 되고자 만들어진 곳이다. 캠프 안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스스로 살아갈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고 또 다른 캠프 안의 여성을 돌볼 수 있는 관계를 구축하는 사회를 만들도록 돕는다. 이웃 여성들과 유대관계를 쌓으며 정신적 성장과 회복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제약 너머로 걸어 나가는 여성들에게 샨티카나는 마음껏 소리내고 웃으며 함께 춤출 수 있는, 또 다른 집이다.
by 수원본부장 손옥자[기억의 분식집, 김명석 / 지식과감성 / 304쪽] 지난 2019년 출간된 장편소설 ‘반달’의 김명석 작가가 5년 만에 신간 소설 ‘기억의 분식집’으로 돌아왔다. ‘기억의 분식집’은 상처받은 과거를 안고 힘든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위안과 희망과 행복을 선사해 주는 ‘힐링 소설’이다. 주방장의 비법 육수로 만든 칼국수를 시그너처 메뉴로 삼는 ‘기억의 분식집’과 그 앞에서 쓰러져 기억상실증에 걸린 채 깨어나 기억의 분식집에서 일하게 된 주인공 ‘유성’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과 그 해결점을 추리해 나가는 내용이다. 책은 ‘기억 상실’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주인공이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어느 날 갑자기 기억을 잃은 주인공은 ‘기억의 분식집’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저마다 깊은 상처를 안고 있는 여러 인물들과 얽히게 된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모인 ‘기억의 분식집’은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치유하는 공간이 된다. 주인공은 비록 기억을 잃었지만, 분식집을 찾는 다양한 사람들과 얽히고 설키며 그들이 당면한 문제에 도움을 주는데, 주인공을 비롯해 각기 다른 상처를 가진 인물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치유해 가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느껴진다. 작가는 따뜻한 시선으로 상처받은 인물들을 조명함으로써 상실의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준다. 단순한 기억의 회복을 넘어,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새로운 자아를 재구성하는 과정으로 이어지는데, 이 과정은 읽는 이에게 ‘상실’이 있기에 ‘회복’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를 통해 현대인들이 겪는 상실과 회복의 문제를 깊이 있게 탐구하며, 독자들에게 자아를 찾는 여정의 중요성을 일깨워 줄 것이다. 또한 유성과 그의 주변 인물들이 겪는 이야기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는 여정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서로에 대한 공감과 연대임을 알려 준다.
by 수원본부장 손옥자[■ 소설, 한국을 말하다┃장강명 외 20명 지음. 은행나무 펴냄. 248쪽. 1만6천800원] 중견부터 신진까지, 널리 알려진 소설가들이 쓴 21편의 4천자 내외 '초단편' 소설집이다. 한국 문학에서 가장 활발하고 꾸준하게 글을 쓰고 있는 작가들이 '현재의 한국 사회'를 주제로 보여주는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다. 거지방, 고물가, 오픈런, 번아웃, 중독, 새벽 배송 등 열쇳말을 통해 현재 한국 사회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어디를 향해가고 있는지, 그 방향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 것인지에 대한 첨예하고 날선 질문들을 던진다.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학원 강사 면접을 보러 갔다가 어처구니 없는 질문 세례만 받고 온 취업준비생 성규(이기호 '너희는 자라서'), 재벌 목숨 한 번 구한 썰로 일약 스타 강연자가 된 셀럽(김동식 '돈'), AI 시대에 맞춰 작가들을 위해 만들어진 '문장 생성사 자격면허 시험'(곽재식 '제42회 문장 생성사 자격면허 시험'), 타투 도안을 자유롭게 시술하고 지울 수 있는 기계를 사용했다가 극심한 부작용을 겪지만, 그보다 더한 편견에 맞서게 된 피해자들(정보라 '낙인') 등의 이야기가 한국 사회의 아이러니를 그린다. 노동, 일상, 관계 등을 열쇳말로 한 소설을 읽다 보면, '이거 내 얘기네'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생생하게 현실을 반영한 소설이 대부분이다. 혹은 아직 접해보지 못한 세상을 경험해보게 한다. 문화일보가 지난해 가을부터 올해 봄까지 기사가 아닌 '이야기'를 통해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자는 취지로 연재한 시리즈를 책으로 엮어냈다. 기획의 말에서는 "어떤 사실은 그대로 보여주는 것보다 이야기로 만들어졌을 때 더 명징해진다"며 "애초 인간과 사회를 탐구하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게 소설이 하는 일 중 하나고, 소설가들은 늘 인간의 마음을 유영하고 있기에"라고 했다. 참여 작가는 장강명, 곽재식, 구병모, 이서수, 이기호, 김화진, 조경란, 김영민, 김멜라, 정보라, 구효서, 손원평, 이경란, 천선란, 백가흠, 정이현, 정진영, 김혜진, 강화길, 김동식, 최진영이다.
by 수원본부장 손옥자[동물의 감정은 왜 중요한가,마크 베코프 / 두시의나무 / 424쪽] "동물은 많은 사람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끌리게 하는 감정을 지니는데, 인간과 동물 사이에 공통 언어가 없는 상황에서 감정은 어쩌면 우리가 가장 효과적으로 서로 다른 종과 소통할 수단이 될 것이다."(본문 중에서)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더 풍부한 감정을 느끼는지, 지능이 높은 동물이 지능이 낮은 동물보다 더 큰 고통을 느끼는지에 대해 세계적 동물학자 마크 베코프는 "그렇지 않다"라고 단언한다. 마크 베코프는 인간의 감정을 특별하고 우월하게 여기는 ‘인간 중심주의’를 오만하다고 비판하며, 오히려 인간이 느끼지 못하는 감정을 동물이 느낄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다양한 동물들의 일화를 전하는데, 이를 통해 동물의 삶 역시 인간의 삶만큼이나 풍부한 감정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동물의 감정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의 혹독한 비판을 받으며 50년 이상 동물의 감정을 연구한 저자는 지난 2007년 내놓은 초판의 감동과 주제 의식을 되살려 17년 만에 전면 개정판을 내놨다. 동물의 감정과 행동에 대해 그간 축적된 다양한 과학적 연구 성과와 증언, 흥미로운 동물의 일화와 저자의 새로운 경험담이 더해져 더욱 깊고 풍성한 내용을 전한다. 책은 열정, 공감, 도덕, 정의, 유대감 등 많은 것을 만들어 내는 인간의 감정과 동물의 감정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감정에 대해 수많은 종이 환경에 대한 적응 수단으로 감정을 진화시킨 ‘진화에 따른 선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동물들은 감정을 통해 서로 간에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하며 결속되고, 또 우호·애정·경쟁 등 다양한 사회적 상호 작용을 촉진하고 조절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많은 종의 감정과 관련한 뇌 일부 영역에서 인간과 유사한 형태의 신경 조직이 발견됐다는 연구 결과들을 전한다. 책 4장에서는 ‘동물에게 도덕적 감수성이 있고 그 감수성이 우리 인간이 보이는 도덕적 행동의 진화적 전조’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며 인간과 동물은 진화적 연속성 위에서 한배를 타고 서로 공존하는 존재라는 결론에 이른다. 책에서는 죽은 친구에게 애도를 표하는 까치들, 장애가 있는 친구를 기다려주며 함께 길을 떠나는 코끼리들, 납치된 소녀를 구해준 세 마리의 사자, 상어의 공격으로부터 인간을 지켜준 돌고래 떼, 헌신적인 부모 역할을 하는 흡혈 동물 호주 거머리 등 흥미로운 동물들의 일화를 많이 만날 수 있다. 저자는 우리가 동물에게 이끌리는 이유는 동물의 감정 때문이며, 동물이 우리에게 이끌리는 이유도 우리의 감정 때문인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책을 통해 동물들의 삶에서 인간 세계의 문제를 절묘하게 맞닥뜨리며 우리 자신을 더 이해하는 계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by 수원본부장 손옥자[■ 조선, 시험지옥에 빠지다┃이한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328쪽. 1만8천원]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발굴해 흥미롭게 소개하는 '역사 커뮤니케이터' 이한 작가가 조선시대 과거 풍경을 생생하게 그려낸 책 '조선, 시험지옥에 빠지다'가 발간됐다. 수능부터 고시까지 전 국가적 관심사인 시험은 500년 전 조선에도 있었다. 모든 출세의 왕도인 과거는 인성과 학식, 국가 경영의 자질 등을 두루 깐깐하게 평가하며 조선의 버팀목이 됐다. 높은 수준을 요구한 대신 급제자에게 부와 명예, 권력이 보장됐으니 시험은 전쟁과도 같았다. 저자는 실록의 기록부터 이황의 편지나 정약용의 문집 같은 개인의 기록까지 과거와 관련된 여러 사료를 찾았다. 책에는 우리 시대에 앞서 시험지옥을 겪었던 선배들의 웃지 못할 일화가 녹아 있다. 1천권 이상의 유교 경전을 외우는 것도 모자라 필체까지 갈고 닦았고, 수많은 학원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유력 가문들은 이름난 학자를 과외 선생으로 데려오기 위해 혈안이었다. 시험장에서는 온갖 부정행위가 시도됐다. 특히 권력형 입시 비리가 횡행하며 조선의 기틀을 흔들기도 했다.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벼슬길에 오른다는 것은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과 동시에 권세를 누리기 위한 자격과도 같았다. 욕망과 좌절로 가득한 치열한 입시 전쟁은 묘한 동질감과 카타르시스를 전전한다. 하지만 그때도 이러한 입시가 가져온 부정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사리사욕과 각자도생의 현실 앞에 흩어지고 무너져버린 조선의 모습을 오늘날의 우리 사회와 비교해볼 만한 일이다.
by 수원본부장 손옥자[아버지의 하얀 이꽃] (홍종의 글·강화경 그림 / 머스트비 / 48쪽) 강원도 태백에는 순직한 광부들을 기리는 순직산업전사위령탑이 있다. 위령탑에는 석탄을 생산하다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4천118명의 이름이 새겨진 까만 위패가 모셔져 있다. 위패에 새겨진 이름들은 우리나라가 전쟁 직후 가난과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던 시절 산업현장의 최전선에 있던 탄광 노동자들이자, 누군가의 아버지의 것이다. 이들을 기억하기 위한 짧지만 강렬한 그림책 ‘아버지의 하얀 이꽃’이 출간됐다. 책의 주인공 ‘밝음이’는 늘 힘든 일을 하면서도 웃으시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버지는 자신이 ‘산업전사’라며 자랑스러워 했지만 밝음이는 아버지가 누구와 싸우는지,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밝음이는 나중에야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가난이란 적과 싸웠고, 또 자신을 위해 깜깜한 어둠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버지는 1960년대 이후 모든 산업의 근간이 된 석탄을 생산하기 위한수많은 탄광 노동자 중 한 사람이었고, 자식의 밝은 미래를 위해 갱도로 들어갔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한다. 그럼에도 밝음이는 아버지가 까만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웃으시는 아버지의 얼굴에 피어나던 ‘하얀 이꽃’을 잊지 못한다. 책은 지난 6월 국내 마지막 탄광이 폐광되면서 석탄 산업이 그 치열했던 막을 내렸지만, 밝음이의 아버지처럼 미래를 밝히기 위해 희생한 광부들의 모습을 기억하고자 출간됐다. 캄캄했던 시절 자식들의 풍요로운 미래를 이루고자 자신을 희생했던 4천118명을 기억하고, 어린이들이 현재의 풍요로움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도록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by 수원본부장 손옥자[■ 한국미의 레이어┃안현정 지음. 아트레이크 펴냄. 434쪽. 3만2천원] 'K-Art, K-Pop, K-Food, K-Movie',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한국의 아름다움은 어느새 한국을 문화의 강국으로 만들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가고 있다. 미술계에도 이러한 K 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대규모 전시가 세계 곳곳에서 열리고 있고, 여기서 안주하지 않으며 한국미를 더 발전시키는 것이 시대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미란 무엇일까. 다소 예스런 느낌이 나는 단어 같지만 한국미는 과거의 역사 속에 머물러 있는 아름다움이 아니다. 여전히 활발하게 현대와 미래로 연결되며 새로움을 지니고 있는 원형의 것이다. 신간 '한국미의 레이어' 저자 안현정은 한국미의 개념을 모호한 단어들로 풀지 않고,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26점의 문화재와 26명의 현대작가를 매칭시켜 설명한다. 분청사기, 달항아리, 고려불화, 달마도, 나한상, 미인도 등 문화재를 김근태, 최영욱, 신제현, 한상윤, 신미경, 김미술 등의 유명 현대작가와 연결지어 놓은 책은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국미를 이해하기 쉽게 보여준다. 저자는 한국미에 대해 '이 땅에 살며 스미듯 이어온 한국인의 독특한 활력'이라 말하며 지금까지도 활발하게 구축되고 있음을 말한다. '눈맛의 발견'이라는 부제를 달아놓은 책은 예술작품을 대할 때 필요한 '눈으로 보는 즐거움'을 독자들이 키울 수 있도록 챕터 속에 '눈맛의 발견' 코너를 넣어뒀다.
by 수원본부장 손옥자[[신간소개]“2150년 지구에 사람이 사나요?”…거꾸로 읽는 46억 년 역사 유쾌하고도 ‘찬란한 멸종’] “생명의 역사는 곧 멸종의 역사이기도 하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5년, 서울시립과학관장 4년, 국립과천과학관장 3년을 지낸 과학 스토리텔러 이정모 작가가 이번엔 46억 년 ‘우리별’ 지구의 역사를 ‘멸종’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냈다. 작가는 자신만의 유쾌함으로 과학 이야기를 쉽게 전한다. 다섯 번이나 대멸종을 겪은 지구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책은 인류가 멸망한 것으로 가정한 2150년 인공지능(AI)과 2100년 화성 로봇이 인류 멸종의 원인을 밝혀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태초의 탄생부터 시간순으로 지구의 역사를 설명하는 다른 책과 달리, ‘찬란한 멸종’은 멸종에서부터 탄생이라는 역순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지난 역사에서 지구가 보여준 생명력의 비법을 살펴보며, ‘기후위기’라는 여섯 번째 위기 상황 속 지구인이 살아남을 방법을 제시한다. 2024년 범고래가 들려주는 지구 온난화, 4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이 말하는 자신들의 멸종, 네 번의 대멸종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백상아리가 이야기하는 4억 년 생존의 비밀, 45억 년 전 달과 바다가 들려주는 지구와 생명 탄생의 장대한 시작 등 또 다른 ‘지구 생명체’의 시선에서 지구역사에 관한 우리가 몰랐던 주요 장면을 접하다 보면 극한 위기 시대를 극복할 방법을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by 수원본부장 손옥자[■ 글자들의 수프┃정상원 지음. (주)사계절출판사 펴냄. 220쪽. 1만5천500원] '음식의 맛은 몸을 자라게 하고 책 속의 문장은 생각을 잘하게 한다. 요리사에게 주방은 언어를 배우는 학교이자 맛과 향이 저장된 도서관이다.' 15년간 프렌치 다이닝, 이탈리안 레스토랑, 스페인 식당, 라면 전문점 등을 거치고 미쉐린 가이드에 등재되기도 한 정상원 셰프는 요리에 인문학의 향기를 입힌다. 그는 늘 지적 설명을 곁들여 음식을 내어 주었고, 손님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또 다른 영감을 남겼다. 정상원 셰프는 이렇듯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매일 문학과 역사, 철학에서 나타난 음식 이야기를 탐독하며 독서 일기를 썼다. 신간 '글자들의 수프'는 음식 이야기 속 인간의 희로애락을 저자만의 경험과 언어로 해석해 펼쳐낸 책이다. 저자는 요리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작품 속에 나오는 음식의 조리법과 제철 식재료에 대해 해설해주며 작품을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한국 식재료는 물론 서양 식재료와 와인, 맥주까지 알기 쉽게 풀어낸다. 또 현기영의 제주, 조정래의 벌교, 정지아의 지리산, 헤겔의 하이델베르크대학교, 마르셀 푸르스트의 콩브레 등 작품 속에 등장하는 무대를 현장 답사한 뒤 음식 문화와 역사까지 녹여냈다. 음식을 만들어 함께 먹는다는 것은 별것 아닌 일 같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다. 음식의 맛만 탐미하면 삶은 빈곤해질 수밖에 없다. 책은 음식 문화에 대한 이해와 함께 단맛, 쓴맛, 매운맛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스토리텔링 했을 때 행복한 순간이 영원히 기억될 수 있음을 전한다. 쏟아지는 음식 문화 콘텐츠의 시대. 음식에 대한 이해와 관심으로 맛있는 한 끼를 먹고 싶다면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어쩌면 우리의 입맛을 자극하는 맛의 원천은 음식에 얽힌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by 수원본부장 손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