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 만에 ‘A+’ 남발 졸속 신용평가에 공공조달 신뢰 ‘붕괴’
[금요저널] 조달청이 공공조달 참여업체의 신용등급을 산정할 때, 자본시장법상 메이저 신용평가사와 신용정보법상 일반 신용평가사를 구분하지 않고 동일한 효력으로 인정하면서 실제 재무상태가 부실한 기업들이 손쉽게 공공조달 시장에 진입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정일영 의원이 조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일반 신용평가사들이 매긴 등급은 메이저 평가사보다 최대 8단계 높게 부풀려진 사례도 확인됐다.
예를 들어, 한 철도차량 제작업체 A사는 매출 4조 3,765억원, 영업이익 4,565억원, 부채비율 163% 수준임에도 메이저 평가사에서는 ‘A+’로 평가된 반면, 일반 평가사에서는 두 단계 높은 ‘AA’ 등급을 받았다.
또 다른 철도차량업체 B사는 매출 5,448억원, 영업이익 315억원, 부채비율이 무려 435%에 달했지만 메이저 평가사에서는 ‘BB’, 일반 평가사에서는 ‘A+’ 등급을 받아 무려 7단계가 상승했다.
세 번째로 확인된 C사 역시 매출 3,015억원, 영업이익 76억원, 부채비율 155%로 재무 건전성이 낮았음에도 메이저 평가사에서는 ‘BB-’, 일반 평가사에서는 ‘A’ 등급을 받아 8단계 차이를 보였다.
이처럼 실제 재무상태와 동떨어진 과도한 등급 인플레이션이 공공조달 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평가 체계의 기준이 지나치게 느슨하다는 점이다.
일반 신용평가사는 법이 정한 6가지 요건 중 단 1가지만 충족해도 평가를 개시할 수 있으며 수수료를 추가로 내면 하루 만에 등급 결과를 발급받을 수 있다.
반면, 메이저 신용평가사는 7개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하며 평가에 통상 20일 이상이 소요된다.
이로 인해 기업들이 “빠르고 높은 등급”을 주는 평가사를 찾아다니는 ‘등급 쇼핑’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정일영 의원은 “일부 중소 평가사들이 ‘급행 수수료만 내면 하루 만에 A+ 발급 가능’ 같은 광고를 내세우며 조달 신용평가가 사실상 돈으로 사는 등급장사로 전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문제는 이 같은 부실 평가의 결과, 공공사업 납품 차질이 잇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된 B사는 코레일 전동차 490량을 제때 납품하지 못했으며 서울교통공사 전동차 336량은 1년 넘게 미납된 상태다.
또, 다른 C사는 EMU-150 전동차 474량 납품이 지연돼 법적 분쟁으로 이어졌고 선금 사용 내역도 불투명해 감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일영 의원은 “실제 재무 상태와 동떨어진 신용등급은 공공조달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세금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며 “조달청의 신용평가 체계를 전면 재검토하고 평가 기준과 절차의 공정성·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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